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인공적인 환경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스팔트로 덮인 길, 유리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빌딩, 형광등 아래의 실내 공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연과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특히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학교와 병원입니다. 학생과 환자처럼 긴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야 하며, 정서적 안정과 신체적 회복이 중요한 이 공간들에서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단순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학교와 병원의 바이오필릭 설계 사례들을 살펴보며, 자연과의 조화가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학교 속 자연의 교과서: 뉴질랜드 ‘티 케후 스쿨’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신체적·정서적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환경입니다. 뉴질랜드 북섬 루아타히나에 위치한 ‘티 케후 스쿨’은 원주민 마오리 공동체를 위한 배움의 공간으로, 세계적인 바이오필릭 설계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뉴질랜드 정부의 ‘Living Building Challenge’를 충족한 최초의 건축물로,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자연 친화적 설계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학교의 외관은 주변 자연환경과 시각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으며, 건축에 사용된 모든 자재는 지역에서 얻은 천연 목재, 점토, 돌 등 생분해 가능한 재료입니다. 학교는 큰 창문과 개방형 구조를 통해 자연광을 최대한 실내로 끌어들였으며, 교실과 복도, 도서관, 식당 등 모든 공간에서 바깥의 숲과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을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은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집중력 향상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실내 공기는 자연 환기를 통해 순환되며, 실내 온도 역시 태양광 패널과 지열 시스템으로 조절되고 있습니다. 화학성 냄새가 거의 없는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함으로써 실내 환경은 일반 학교보다 훨씬 쾌적하고 안전합니다. 교육과정 또한 바이오필릭 환경에 맞춰 구성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교실을 나와 정원에서 식물을 기르거나 지역 생태계 관찰 활동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티 케후 스쿨은 건축적 요소와 교육 철학이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아이들이 단순히 책 속의 자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 함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핵심 정신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숲을 들이다: 노르웨이 ‘스툭세네스 헬스센터’
병원은 환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밀폐된 구조와 단조로운 색상, 무기질적인 재료로 인해 환자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르웨이 북부의 하르스타드 지역에 설립된 ‘스툭세네스 헬스센터’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병원은 기존 병원의 딱딱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자연 속에서 머무는 듯한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외벽은 현지의 삼나무 목재를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주며, 건물 주변에는 넓은 정원과 산책로, 물이 흐르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어 환자들이 자유롭게 자연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각 병실마다 대형 창문이 설치되어, 환자들이 병상에 누운 채로도 숲과 하늘, 새와 나무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실내 공간 역시 나무 질감이 살아 있는 소재로 마감되었고, 인공 조명은 자연광의 흐름을 모방하는 조도를 사용해 생체 리듬을 방해하지 않도록 고려되었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식물원과 같은 ‘그린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병동이 배치되어 있으며,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과 방문객들도 이 공간에서 잠시나마 자연 속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스툭세네스 헬스센터에서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환자의 회복 속도를 높이고 통증 완화, 수면 질 향상, 약물 의존도 감소 등의 효과를 유도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연 요소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치유를 촉진하는 환경 요소로서의 실질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의 감성을 키우는 환경: 미국 ‘에콜린 차터 스쿨’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에콜린 차터 스쿨’은 학생의 감성과 생태적 사고를 함께 기를 수 있도록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철저히 반영하여 설계된 공립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환경 자체가 교과서’라는 철학 아래, 학생들이 직접 자연을 만지고 관찰하며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된 교육 환경으로 유명합니다.
건축적으로는 낮은 층고, 넓은 창, 내부 벽면의 생태 벽(green wall), 교실마다 배치된 미니 식물원 등이 특징입니다. 학교 건물은 햇빛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자연채광을 최대화하고 인공조명 사용을 최소화한 설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창호는 열전도율이 낮은 삼중유리로 시공되어 외부 온도 변화에도 내부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며, 환기 역시 전기 환기와 자연 환기를 병행하여 실내 공기의 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학교 마당과 운동장은 일반적인 인조 잔디가 아닌 자생 식물로 조성된 들판이며, 텃밭, 나비 정원, 빗물 정화 연못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생태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교과 과정에도 이러한 공간 활용이 적극 반영되어, 과학 시간에는 토양과 곤충 관찰, 수업 간 쉬는 시간에는 텃밭 가꾸기나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기 등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책임감을 기르게 되며, 동시에 학습 집중력, 정서적 안정, 공동체 의식까지 고루 발달하게 됩니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으며, 바이오필릭 환경이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 공간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치유의 공간이 된 병동: 대한민국 ‘서울은평병원 치유의 숲’
국내에도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적용된 병원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은평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병원으로, 환자들의 정서적 회복을 위해 병원 내외부 공간에 다양한 자연 요소를 적극 도입하였습니다.
이 병원은 특히 ‘치유의 숲’이라 불리는 자연 재활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병원 건물과 외부 정원은 부드러운 곡선형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환자들이 복도나 로비를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햇살, 바람, 식물, 새소리를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녹지 통로와 실내 정원, 실외 명상 공간, 자연 재료를 사용한 아로마 테라피실까지, 병원 전체가 하나의 생태적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대형 채광창과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소음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구조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정신질환 환자들에게는 감각 자극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을 통해 심리적 치유를 도모하는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핵심 치료 환경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의 평가에서도 치유의 숲 공간은 휴식, 상담, 명상,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며, 실제 치료 성과와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은평병원은 국내 공공의료시설에서도 바이오필릭 디자인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앞으로의 공공병원 설계 기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학교와 병원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와 순간을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그 공간의 질은 곧 우리의 건강과 교육, 삶의 질로 이어집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단순한 공간 미학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환경의 조화를 실현하는 실천적 해법입니다. 위에서 소개해드린 다양한 사례들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학교와 병원이 이러한 자연 친화적 설계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변화시키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