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전 지구적인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제 기업들은 재무제표만으로는 충분한 평가를 받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탄소중립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경영 전략, 즉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탄소회계’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탄소회계의 정의부터 탄소중립 보고서의 역할, 그리고 ESG 경영과의 연결점까지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탄소회계란 무엇인가?
탄소회계는 기업이 생산 및 운영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회계와 달리 화폐 단위가 아닌 온실가스 배출량을 톤 단위로 측정하며, 국제적으로는 ‘탄소발자국’을 수치화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단순한 환경 데이터 수집을 넘어서, 실제 탄소 배출량에 따라 기업의 경영 전략, 리스크 대응, 투자 유치까지 좌우되는 중요한 관리 지표가 됩니다.
탄소회계는 흔히 세 가지 범주(Scope 1, 2, 3)로 나뉘어집니다. Scope 1은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예: 제조 공정 중 화석연료 연소), Scope 2는 전기, 열, 스팀 등 에너지 사용에서 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의미하며, Scope 3는 원자재 구매, 물류, 폐기물 처리 등 기업 외부에서 발생하지만 기업의 가치사슬과 관련된 배출량을 포함합니다. 이 중 Scope 3는 측정이 어렵지만 실제로 전체 배출량 중 70~9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로 간주됩니다.
탄소중립 보고서는 어떤 역할을 할까?
기업이 탄소회계를 통해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했다면, 그다음 단계는 이를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탄소중립 보고서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보고서에는 기업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감축 목표, 실천 계획, 달성 성과, 그리고 향후 대응 전략 등이 포함됩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관련 문서를 넘어, 투자자, 소비자, 정부기관, 금융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구축 수단이 됩니다.
특히 최근 들어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은 기후 리스크 정보를 공개할 것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에서는 글로벌 공시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탄소중립 보고서는 자율적 작성 단계를 넘어서 규제 대응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보고서 작성 역량은 기업의 ESG 경쟁력을 판단하는 주요 척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고서에는 단순히 현재 상황을 나열하는 것에서 나아가, 배출량 감축을 위한 로드맵, 탄소중립 연도 목표, 탄소가격 책정 여부, 그리고 외부 인증 여부까지 포함되어야 하며,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제3자 검증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ESG 경영에서 탄소회계가 핵심인 이유
ESG 경영이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비재무 요소를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중 ‘E’ 환경 항목은 대부분 탄소 배출량 관리 능력으로 평가되며, 탄소회계는 그 기초가 되는 데이터입니다. 기업이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탄소회계입니다.
투자기관 입장에서는 ESG 평가가 투자 의사결정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기후위기에 따른 리스크를 정량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Scope별 탄소배출량을 중요한 지표로 봅니다. 탄소 감축 계획이 미흡하거나 이행 의지가 낮은 기업은 미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반대로 과학기반 감축목표(SBTi)에 근거한 전략을 수립한 기업은 장기적 성장 가능성이 높은 ESG 우수 기업으로 간주됩니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탄소회계는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수단이 됩니다. 배출량이 높은 공정이나 설비를 파악하여 개선하거나,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세우는 데 실질적인 데이터 기반이 되며, 이는 곧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됩니다.
탄소회계를 위한 기업의 준비와 과제
탄소회계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 내 데이터 수집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생산설비, 물류, 구매, 판매 등 전 부서에 걸쳐 배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집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디지털 기반의 통합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단순한 배출량 기록을 넘어서, 감축 효과를 평가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ESG 전문인력의 확보와 교육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한편, 국제표준에 맞는 공시체계 대응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다양한 탄소공시 기준이 존재하며, 이들 중 어느 기준을 채택할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보고서를 검증받을 것인지에 대한 전략 수립이 필요합니다. 국내에서는 ‘환경정보공개제도’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활동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향후 탄소세와 같은 경제적 규제가 도입될 경우 더욱 철저한 대응이 요구됩니다.
또한 Scope 3와 같은 가치사슬 전반의 배출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협력사, 공급업체와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중소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전 과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검증하기 위해선 표준화된 툴과 교육, 인센티브 제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대기업의 공급망 책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탄소회계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경영의 필수조건
이제 탄소회계는 단순한 친환경 경영의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 되었습니다. 정확한 탄소 측정과 투명한 보고, 그리고 이에 따른 감축 전략이 뒷받침되어야만 탄소중립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습니다. ESG 경영의 근간이 되는 이 회계 시스템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평판과 경쟁력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환경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탄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전략적 자산입니다. 탄소회계를 통해 기업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ESG의 교차점에 서 있는 탄소회계, 지금 바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